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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모정(永慕亭)

영모정(永慕亭) 대표이미지

기본정보

창건자
임붕
창건시기
1519년
인문학적 특징
절의의 선비 정신 받든 효심 정치·사회·문화적 의미 남다른 공간
건축적 특징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실형 구조를 갖췄으며,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얹은 건물.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회진길 14-22(회진리 90)
문화유산 등급
전라남도기념물
인문 분야
절의의 선비정신 받든 효심
정치·사회·문화적 의미 남다른 공간

영모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신풍리 회진마을 좌측 풍호 언덕에 있다. 1519년 승지 벼슬을 지내고 있던 임붕(林鵬, 1486~1553)이 기묘사화 이후 낙향하여 건립하였다. 이때의 이름은 귀래정이었다. 단층 팔작 형태에 골기와를 얹은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실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후 1982년 퇴락한 이 정자를 후손인 나주임씨대종중에서 중수하였다. 주변에 「백호임제선생기념비白湖林悌先生記念碑」와 「귀래정나주임공붕유허비歸來亭羅州林公鵬遺墟碑」가 있다.
임붕은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서 태어났다. 자는 중거仲擧, 호는 귀래정歸來亭, 본관은 나주이다.
1510년(중종 5)에 생원시에 급제하였다. 1519년 기묘사화 때 성균관 유생 2백여 명과 함께 대궐 문앞에 나아가 조광조의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1521년에는 다시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 옥당,
병조좌랑을 거쳐 1531년 경상도 도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교리에 이어 좌승지가 되었다. 이 무렵 나일손, 정문손, 김구 등 나주 명사 10인과 함께 ‘동진東晉 목제穆帝 9년에 왕희지 등이 회계산의 난정蘭亭에서 수계하였던 고사’를 본받아 금강십일인계회錦江十一人契會를 만들어 자주 시주詩酒를 즐겼다고 한다. 1552년(명종 7)에 광주목사로 부임하고 이듬해 재임 중에 별세하였다.
임붕의 사후 그의 네 아들 중 임복(林復, 1521~1576)과 임진(林眞, 1526~1586)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1555년(명종 10)에 이를 중건하면서 ‘영모정永慕亭’이라고 명명하였다. 후일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나주 임씨 문중에서 1982년에 중건하였다. 1933년에는 영모정에서 회진개혁청년회가 항일내용을 담은 연극을 공연하다 왜경에게 탄압을 당하기도 하였다.
임복도 나주시 다시면 회진에서 태어났다. 1540년(중종 35)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1546년(명종 1)에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었다. 1547년(명종 2) 발생한 양재역벽서사건 때 윤걸의 옥사에 연루되었다는 모함으로 평안도 삭주에 유배되었다. 1553년(명종 8)에 부친이었던 임붕이 별세하자 아우 임진과 함께 시묘살이를 하고 그 부친이 부모상을 당하여 시묘하였던 자리에 부모를 오래도록 사모한다는 뜻의 ‘영모정’을 중건하였다. 1571년(선조 4)에 회령부사로 복직되었다가 다시 모함을 받아 파직되어 나주로 돌아왔다. 이때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는 10여 조항의 상소를 올렸는데, 그 가운데 전선戰船의 등판에 칼을 많이 꽂는 검선劍船 만드는 제도를 제안했고, 이는 훗날 임진왜란 당시 수군들의 주요 무기요 함선이 되었다.
영모정과 관련하여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 바로 <희경루방회도喜慶樓榜會圖>인데 이 그림에 영모정의 주인인 임복의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546년(명종 1) 증광시 문․무과 합격 동기생 5명이 1567년(선조 즉위) 전라도 광주의 희경루에서 만나 방회榜會를 가진 기념으로 제작한 기년작紀年作 계회도契會圖이다. 인물을 묘사한 필치가 매우 생기 있고 활달하며 자신감이 넘친다. 또한, 비슷한 자세의 인물을 같은 모양으로 판에 박은 듯 반복해서 그리는 형식적인 면이 적으며, 희경루 건물 묘사에서도 보이는 대로 그린 듯한 꾸밈없는 필치를 엿볼 수 있다. 보물 제1879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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