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쌍계정(雙溪亭)

쌍계정(雙溪亭) 대표이미지

기본정보

창건자
정가신 (鄭可臣, 1224~1298)
창건시기
1280년
인문학적 특징
네 문중의 '금안동 대동계', 유교 공동체 자치 문화 공간
건축적 특징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칭형 구조,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
소재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251
문화유산 등급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인문 분야
쌍계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금안리에 소재한 정자로, 고려 충렬왕 6년(1280) 문신 설재(雪齋) 정가신(鄭可臣)이 창건하였다. 정가신은 원나라 세조로부터 그 학식과 단정함을 인정받아 가신(可臣)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인물로, 간신들의 횡포에 관직을 버리고 낙향하여 이곳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정자의 명칭은 건물 앞뒤로 금안천과 수각마을 시냇물이 합류하는 지형적 특성에서 유래하였다. 건축 형식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지붕 대청형 건물로, 과거에는 온돌방을 갖추어 겨울철 서당으로도 활용되었다. 정자 앞에는 수령 400년이 넘는 팽나무가 자리하여 고즈넉한 정취를 더한다. 이곳의 가장 큰 역사적 특징은 개인이나 특정 문중의 사유 공간에 머물지 않고, 마을 공동체인 금안동 대동계의 거점이자 강학(講學)과 향약(鄉約)이 시행되던 공적 장소였다는 점이다. 고려 시대 정가신·김주정·윤보 등 세 현인이 도를 닦아 삼현당(三賢堂)이라 불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신숙주·신말주·김려 등 당대 석학들이 교유하며 호남 시단(詩壇)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나주 정씨를 포함한 네 가문이 공동 관리하고 있어 사성강당(四姓講堂)으로도 통용된다.
내부에는 명필 한석봉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쌍계정' 편액과 조선 시대 문인들이 남긴 46점의 제영시가 걸려 있어, 나주 지역의 뿌리 깊은 유교 문화와 공동체 정신을 상징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건축 분야
쌍계정은 마을 안쪽 길을 따라 1Km쯤 가다 보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다리 건너에 수령 400여 년의 팽나무를 앞에 두고 자리 잡고 있다. 이 정자는 수각마을에 있다고는 하나 반송마을의 바로 옆에 있어 금안리 전체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고 보아야 정확하다. 1601년, 1642년, 1736년, 1842년, 1938년에 중수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단층의 맞배지붕 골기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형이다. 옛날엔 마루 양옆에 방이 딸린 정각이어서 겨울에도 서당을 열어 마을의 집회가 가능하였다고 한다. 또한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현존 건물의 왼쪽에 제실 3칸이 있었다고 하나, 오늘날에는 없어지고 3칸 약 15평의 마루로만 되어 있다. 쌍계정이란 이름은 정자 앞에 금안천이 흐르고 뒤에는 수각 쪽에서 내려온 작은 시냇물이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정자는 흔히 있는 씨족 집단이나 개인 소유의 것과는 달리 금안동 대동계의 역할을 가진 강학과 향약의 시행 장소라는데 그 특징이 있다. 1973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3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나주 정씨, 하동 정씨, 풍산 홍씨, 서흥 김씨의 사성씨四姓氏 문중에서 공동관리하고 있다. 사성강당四姓講堂이라고도 하며, 한호가 썼다고 하는 ‘쌍계정’ 액자가 있다.
쌍계정에는 46명의 인물이 제영한 시가 걸려 있으며, 대부분 조선 시대 인물들이다. 그 중 특히 남강南岡 김려金礪는 숙종대~영조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행실이 뛰어나고 학문에 깊이가 있는 나주의 인물이다. 김려는 이때 자리를 같이했던 홍재대, 정언복, 나연일, 김덕정, 홍유철 등과 시적 교유를 활발히 하며 쌍계정을 무대로 하여 제영시 짓기를 즐겼다. 이는 숙종대~영조대에 이들이 쌍계정 시단을 중심으로 하여 작시 활동의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당시의 나주시단 내지는 전남시단을 대표하는 괄목할 만한 작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기타 > 누정 > 나주누정 > 쌍계정(雙溪亭)

자료ID

0 / 0

원문

국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