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과면 합강리 류팽로(柳彭老) 정렬각
월파 유팽로(柳彭老, 1554~1592)의 정렬각은 옥과 합강리의 마을 끝 산자락의 사당 왼편에 자리한다. 큰 규모의 건물은 정면에 정렬각(旌烈閣)이라는 문액이 걸려 있고, 안에는 7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즉 1623년에 세운 충신현판과 열부현판, 1832년에 홍진연이 쓴 정려중수기, 1892년 정봉현이 쓴 정려중수기, 1937년 이윤규가 쓴 삼강문 중수기, 1960년 이병은이 쓴 정려중수기, 1892년 3명의 지은 시를 새긴 시판 등이다. 이 건물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제25호로 지정되었다.
류팽로의 자는 형숙(亨叔), 호는 월파(月坡),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아버지는 경안(景顔)으로, 옥과의 합강정(合江亭)에서 태어났다. 기묘년(己卯年, 1579)에 사마(司馬) 양시에 합격하고, 무자년(戊子年, 1588)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정자(弘文正字)에 올랐다. 곧 성균관 학유(成均館學諭)에 제수되었는데, 부름을 받은 지 5일 만에 무릇 3번 나아가 치란(治亂)의 대책에 대해 극진하게 상소했으나 소인배들에게 노여움을 받았다. 임진왜란을 당하여 성균관 학유로써 양대박(梁大樸)·안영(安瑛)과 담양부에서 군대를 합하고, 제봉 고경명(高敬命)을 맹주로 추대하여 금산전투에 나아가 적을 토벌하였으며, 병력이 다해지자 경명(敬命)과 머리를 나란히 하고 전사하였다. 이 일이 알려지자, 사간(司諫)에 증직하고 또한 정려를 명하였다. 인조 때 왕명에 의해 좌승지(左承旨)에 추증(追贈)되었다. 아내 김씨는 사인(士人) 침(琛)의 딸로, 남편의 죽음을 듣고는 직접 목을 칼로 끊고 기절하였다가 다시 소생하였으나, 대상에 미치지 못하고서 죽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특명으로 삼강문(三綱門)이 내려지고, 신하를 보내 치제(致祭)케 하였으며, 대사간 좌승지(大司諫左承旨)에 추증하였다. 광주 포충사(褒忠祠)와 금산의 종용당(從容堂)에 설향(設享)하였고, 옥과의 영귀서원(詠歸書院)에 배향하였다. 격문(檄文)은 『정기록(正氣錄)』에 실려 있고, 실적(實蹟)은 선묘보감(宣廟寶鑑)과 삼강행실(三綱行實)에 실려 있다.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와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가 그의 행장을 찬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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