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곡면 원달리 태안사 적인선사(寂忍禪師) 탑비
872년에 세운 적인선사(寂忍禪師) 탑비는 동리산문을 개창한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 785~861)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을 말한다. 태안사 북쪽 언덕에 자리한 적인선사탑(국보)의 오른쪽(향좌측)에 위치한다. 파손된 옛 비편은 탑비 오른쪽 옆에 놓여있는데, 비 표면이 많이 훼손되었으며 겨우 몇 글자 정도 판독이 가능하다. 옛 비문은 화엄사에 소장된 필사본이 『조선금석총람』에 수록되었다. 비신은 1928년 9월 9일에 새로 세웠으나 귀부는 원래의 것이고 이수는 『태안사사적』에서는 광자대사의 것을 얹었다고 한다. 원래의 글은 신라 한림랑(翰林郞) 최하(崔賀)가 지은 것이지만, 김돈희(金敦熙)주 1가 고치고 줄여서 전면에 적은 것이고, 후면의 글은 구산후학(龜山后學) 영호정호(映湖鼎鎬)가 삼가 적은 것이다.
적인선사 혜철(慧徹)의 자는 체공(體空), 속성은 박씨(朴氏)이고 경주사람이다. 동리화상이라고도 부르고 시호는 적인(寂忍)이다. 탑호는 조륜청정이다. 제자로는 고려 태조의 신임을 받은 윤다와 도선・경보 등이 있다. 선종 9산문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을 개창한 사람이다. 15세에 출가하였으며, 30세가 되자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에서 선종승려로 명성을 떨치던 지장선사(智藏禪師)에게 수학하였다. 55세까지 중국을 두루 돌아다니며 선종사상을 공부하다가 귀국하였다. 처음에는 무주 쌍봉사에 머물렀다. 후에 곡성 태안사로 옮겨 동리산문을 개창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861년 77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탑비는 경문왕의 명으로 872년에 건립되었다. 비문을 지은 사람은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기도 했던 한림랑(翰林郞) 최하(崔賀)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와 삼랑사비문 그리고 흥덕왕릉비문을 쓴 이로 알려진 중사인(中舍人) 요극일(姚克一)이다. 요극일은 여러 승려의 비문을 썼는데 통일신라시대 구양순체의 대가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다.
여기에서는 신비의 내용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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